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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Renaissance)

브라이언라이프 2020. 4. 14. 18:45

르네상스(프랑스어: Renaissance, 영어: Renaissance, 이탈리아어: Rinascimento[1]) 또는 문예 부흥(文藝復興), 학예 부흥(學藝復興)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한다.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안가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이탈리아어로 Il Rinascimento(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이 말은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인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영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원 의미는 “재생”(再生, rebirth)이라는 뜻으로 르네상스라는 개념에 포함된 재생이라는 의미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고전 텍스트의 재발견이며 또 하나는 유럽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 자체이다. 흔히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다 르네상스라는 명칭이 개념화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겪었다.

1550년, 이탈리아의 화가-역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Le vite de' piu ecce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중세 예술이 극복되는 과정을 ‘미술의 재생’이라고 언급.[2]
1559년, 프랑스의 인문주의자 아미요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ΟΙ ΒΙΟΙ ΠΑΡΑΛΛΗΛΟΙ)을 번역하면서 그 헌정문에 ‘문예의 재생’을 언급
1697년,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벨이 “역사비평사전”에서 ‘문예 르네상스’라는 항목 수록
1701년, 프랑스의 문학자 퓌르티에르이 “보편적 사전”에서 ‘미술 르네상스’라는 항목 수록
18세기, 볼테르는 르네상스 시기가 중세로부터의 탈출구가 되었다고 간주
1855년,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가 “프랑스사”의 7권에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여 최초의 학문적 관심사를 불러일으킴
1860년, 스위스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에서 르네상스의 개념을 확립
1975년 이후 많은 학자들은 르네상스가 하나의 특정한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해스킨스등과 같은 역사가가 ‘12세기 르네상스’나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작업들 때문에 생긴 발상이다. 지금은 이런 관점이 학자들 사이에 많이 보편화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국 르네상스’ 등 다양한 용례들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등장으로 요즘에는 ‘르네상스 시기’라는 말이 ‘근대 초기’라고 대치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라는 말의 조어력은 점차 커져서 어떤 시기의 전성기나 융성기를 할렘 르네상스나 샌프란시스코 르네상스 등과 같이 은유적으로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출처 : 위키백과